어릴 때부터 장녀로서 여러 책임을 강요받고
스스로 그 자리에 익숙해진 언니와 달리
나는 늘 하고 싶은 대로 했더랬다.
(부모님이 오냐오냐 키운 초딩은 대략 즐~이라지만
사실 나도 알고보면 그렇게 자랐지 않은가?
부모님이 오냐오냐 하시지 않아서 그러지..)
끝끝내 허락하지 않으면 아예 무시하고
내 기준대로 내 목적을 이루고 만족해버리는 그런 고집쟁이였다.
늘 어른이 타이르시는 대로, 책에 씌어 있는 대로,
자신이 멋지다고 납득한 길로 성큼성큼 따라간 언니와 달리
나는 항상 '원래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
자기 본질을 무시하고 그런 척하는 게 더 웃긴 거야!'
라고 생각한 어찌보면 치기에 가득한 반항아였었다..-.-;


그 기질에 의해 나는 아직까지도 흔히 이야기되는
세상의 정도(正道)에 대해 거부감이 막심했던지도 모른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정도를 이야기하는 자가
정작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나약함이나 죄악,타고난 불리한 조건에 대해서
철저히 방어적 무관심-또는 방임적인 그런 태도야말로
사실 가장 큰 나약함이고 죄악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보다 더욱 부족한 사람을 끌어안을 수 없다면
자신이 가진 우월한 가치가 무슨 소용이 있게 되는 걸까?
좋은 머리가 우둔한 사람을 사회에서 골라내는 데에만 쓰여지고
독실한 신앙심이 불신과 물욕에 가득찬 자들을 배척한다면
그 순간 자신이 노력해서 손에 넣었을 하나의 빛은
자만과 비뚤어진 우월감만을 채워주는 도구가 될 뿐.
(자질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인차가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속한 이 나라는 어릴 때부터 느낀 바로 정말 배타성이 강했다.
우리와 다르다면, 우리와는 함께할 수 없다는 결론이
너무나 빨리 내려지고, 그 다음부터는 배척이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내가 '좋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기준이란
누구나 생각할 수 있을 만한
예의바른지, 타인에게 사려깊은지, 어른스러운지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정말 마음을 확 잡아끄는 힘이라면
그건 바로 솔직함이다.
그건 그 사람이 예의라고는 눈꼽만큼도 없고
남을 전혀 배려할 줄 모르고 자기 생각밖에 못하며
어린애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용서하게 만든다.
적어도 그건 기만이나 위선이 아닌 진실이기 때문에.


자신을 그 어떤 것으로도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보일 수 있는 솔직함.
"이게 나야! 싫으면 네가 꺼져"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타인에 의해 어떻게 재단될지 두려워
영혼 속에 있지도 않은 것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자신조차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놓쳐버릴
허공에 떠다니는 단어들로 자신을 꾸미는 그런 사람보다-
그래서 되려 약한 이들 앞에서 자신의 나약함을 폭발시키는
그런 더러운 인간보다,
항상 싸구려와 천박함의 홍수 속에 목욕을 해도
그 속에 자신만의 진실이 있는 사람.
그래서 항상 누구에게나 일관성 있을 수 있는 사람.


그러나 그 솔직함이란 사실 양날의 칼이다.
난 너무 솔직한 사람도 좋아하지 않으니까 -ㅂ-;
(그런데 이걸 어떻게 구분짓는지는
그야말로 내 내면에서만 정해지는 미묘한 문제)
하지만 조금씩 살아가면서 배우게 되는 건
사람에게 있어 가장 큰 힘과 매력은
솔직함에서 나온다는 거다. 그건 정말 사실.


내 자신의 큰 무기임에도 불구하고,
남으로부터 "예의상 발언"을 듣는다는 건
정말이지 그렇게 좋은 기분이 아니다.


말로만 나를 인정하고 좋아한다면 그건
어떤 의미에서 나를 능멸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나는 점점 더 애정이나 우정을 믿지 못하게 될 것이고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산다는
어떻게 보면 암울한 가치관이 굳어져 가게 되겠지.


책임질 수 없다면 행동하지 말라는 나의 빡빡한 기대가
너무 많이 부담스러웠을까? 미안해.


'나를 좋아한다면, 내면까지도 완전히 내 것이 되어줘!!'


그렇게 소리치고 싶은 걸까, 나는?
나는 좌뇌로만 [너는 너의 것이야]라고 생각한다.
반쪽짜리 어른인 나는 믿을 수밖에 없는 거야.
늘 그렇듯이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나아질 거라고.
반드시 거칠 수밖에 없는 거라면
되도록 아무에게도 상처주지 않도록...


미래에 흠집을 내지 않을 수 있다면,
적어도 없었던 일처럼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그걸 위해서라면
지금까지처럼 결국 발을 떼지 못해 기회를 잡지 못하는
--그런 바보가 된다고 해도 괜찮아.
나는 또 이렇게 결론을 내렸어.
그래서 나는 또 변하지 않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상처받기 두려워
바보가 되는 걸 더 이상 한심하다고 하지 않을 거야.


사람과 부대끼고 서로 상처주고 감싸안고 용서하고..
그런 경험이 많이 부족한 나로선
이것 역시 아직까지 어리다는 실증일지도 모른다.
감정적 훈련은 나 한 사람의 단위를 벗어나 두 사람부터가 되는 순간
나의 엄청난 미숙함과 저열함을 끊임없어 각인시켜 괴롭게 한다.
그래서 눈을 감고 싶어지고 피하고 싶어지고,
없었던 일로 하고 싶어지고..
그런 무서움을 끝끝내 피해가지 않도록
내 어깨를 꽉 붙들며 용기를 주는 그런 사람이 필요해.
가끔 정말 그런 사람이 절실할 때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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