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왜 사랑하는 줄 아느냐.
그 못생긴 눈, 그 못생긴 코 그리고 그 못생긴 입이며 다리며 몸뚱어리들을 보고 무슨 이유로 너를 사랑하는지를 아느냐.
거기에는 오직 하나의 커다란 이유가 있다.
나는 고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의 고독함은 너 같은 성격이 아니고서는 위로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두꺼비는 밤마다 내 문갑 위에서 혼자 잔다. 나는 가끔 자다 말고 버쩍 불을 켜고 나의 사랑하는 멍텅구리 같은 두꺼비가 그 큰 눈을 희멀건히 뜨고서 우두커니 앉아 있는가를 살핀 뒤에야 다시 눈을 붙이는 것이 일쑤다.


김용준 님의 수필 [두꺼비 연적을 산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고독한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고독한 사람은 때론 그 갈증 때문에
무척 짙은-의도해서는 가지기 힘든-흡인력을 가지게 되어
다름아닌 나라고 해도 약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럴 때면 나는 늘 가슴 속에 납으로 된 칼처럼 품고 있던
다짐을 잊어버릴 수도 있겠지.


고독의 도가 지나쳐 고독에 지배당해 버린 사람은
어떤 모양으로든 타인에 대한 갈구가 극도로 커져
결국은 자신의 원래 주형조차 잃은 채
자신의 심장 안으로 쭈그러들어 붙어버린다는 것을.
마치 블랙홀처럼 팔 안으로 한 번 들어온 것은
여지없이 그 인력에 빨려들어 함께 달라붙어 버린다.
그의 우주에서 평행한 공전이나 자전은 없다.
오직 스스로의 갈증에만 눈이 멀어 서로 꼭 붙은채 쭈그러들어 갈 뿐.
해갈이든 식상이든 그 인력이 다하고 나면
서로 다시는 함께할 수도,
혼자였던 원래 형태로 돌아갈 수도 없다.
한결같이 하는 소리는 '이게 아니었는데'...
파충류가 아니라서 공기중에 오래 있다 보면
갈증은 머지않아 또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럼 언젠가 심장의 인력은 돌아오겠지..
쓴맛 나는 문절망둑에서 무미건조한 육포로의 대량양산.


몸 안팎도 구별 못하는 차가운 피의 파충류로 태어날 순 없었다.
그렇지만 따뜻한 피를 원하게 된다면
지금까지 나에게 공기와 같았던 이 바닷물이 날 얼어죽게 할 거야.
아직은 다들 차가운 피부를 원하거든.


언어의 자기정리와 배설적 기능을 찬양하고픈 요즈음이다.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갖지 못한 것이
오늘만큼은 슬프지 않고,
충분히 타인에게 영향받을 수 있는 감수성을 가졌음을
오늘만큼은 한없이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수필집이나 더 찾아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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