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병이다.
이 정도면 병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어..
[상대방 전혀 군소리 안하는데 나 혼자서 밥상 엎기가 3번]

작년 초엔가 홈페이지 한 곳을 만드는데, 되도록 무난하고 평범한 디자인일 것-그리고 나이드신 분들을 고려해 보기 편한 디자인이라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그야말로 마이너 취향이었던 나는 픽셀을 세세히 따지는 쫌생이 디자인에 곧 죽어도 tahoma 7pt를 사랑하는 족속이었기에..
아 젠장 내가 홈페이지 만들어보라면 진짜 제일 자신없는 게(..) 바로 관공서나 사람들 많이 오는 포털사이트 디자인이다..그 무난함이란게 대체 뭔데 젠장. 난 전혀 감을 못잡겠다 이거다. 만들어진 모양을 보면 아아~하지만 도저히 내가 그렇게 만들지는 못하는 그런 한계다.
그때 세 번 정도 밤새서 시안 만들어서 그것들이 다 리테이크 당했을 때..으아아 좀 과장해서 죽고 싶었다.
그것도 매우 사려깊고 나이드신 분들이 시안을 완곡히 거절하다 못해, 마지막으로 통과된 시안에 괜찮다고, 맘에 든다고 말해주시는 것도 말 그대로 '사려깊음'의 멘트인 것만 같아 괴로웠다.
예의상 돌려서 해주는 말은 직설적인 말보다 뜨겁진 않지만, 묵직함은 그대로인 법이다.

열심히 만들었는데 별로 마음에 안 들어해준다면 괴롭다.
아무리 내딴엔 열심히 했어도 상대의 맘엔 들지 않을 수 있고, 그건 상대의 잘못이 아니다.
상대방이 원하는 이미지에 내가 맞춰야 한다. 내 책임이다.
속으로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데 예의상 좋다고 말해준다면 그것도 정말 두려운 일..
안타깝게도 평소엔 눈치 바닥인 주제에 그런걸 눈치 못챌 만큼 바보가 되진 못한 거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어떻냐면, 다 만들어놓고서는 맘에 안들어 뒤집어엎는 게 지금 벌써 3번째다.
뭘 그렇게 잘하고 싶은 건데?

이거 그대로 갖다주면 무리없이 끝나겠지.
운이 좋으면 마음에 들어해주실 거고...운 나쁘면 다시 해야 해.
그렇지만..내 맘에도 이렇게나 안 드는 디자인을 과연 맘에 들어해줄까?
상대의 마음에 찰 만한 디자인이 아니라면, 그 상처를 어떻게 감당하나.

요며칠 빨리 해줘야 하는데 그러고 있지 못하다는 압박감에 악몽 꾼게 여러번...
(꿈속에서 무슨 전쟁이 나서 비처럼 내리는 총탄 속을 뛰어다니질 않나, 어린애들의 잘린 머리를 가방에 넣고 거리를 활보하질 않나, 끔찍했다)
난 압박감에 시달리지 않고 책임감 있게 시간맞춰 잘해내는 사람이고 싶다.
그렇지만 그러기엔 내가 너무나 못나고 게으르고, 의지박약에 시간 쪼개기를 못하는 사람인가 보다.
어쩌면 컴과 함께 추운 거실로 쫓겨나 스캔조차 하기 힘들어진 것에 대한 투덜거림?
아아 모르겠어--
지금 상당히 피곤하고 이리저리 스트레스가 쌓인 바람에, 정리되지 못한 문장이 속사포처럼 쏟아지고 있다.

요즘의 가장 큰 괴로움은 나의 덜떨어짐에서 온다.
클라이맥스는 어제 새벽이었는데-그래도 오늘 새벽 즈음해서는 조금 정리가 됐다.
어젠 별 쓸데없는 생각으로 괜히 집엘 안 들어가고 추운 밤거리를 서성였다.
내가 갈 수도 있었던 길로 배우 이은주씨가 가버렸다.
나는 역시 죽고 싶지는 않다. 여기서 이렇게 끝나버린다면 너무 슬퍼.
결국 살아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기왕 살아있는 거 잘살아야 하고 말이다..
지금은 전혀 그런 기운이 안나지만..
나의 유일한 재산인 낙천성마저 이렇게 사라져가나?

나이먹으면 먹을수록 느끼는 건-시쳇말로 돈 버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앞으로 더 얼마나 많은 걸 배우고 생각하고, 그때마다 괴로워해야 하는 걸까?
어른,사회인으로서 책임은 무거운데..알아야 할 것은 많은데..
나는 어리버리하게 계속 못 따라가고 뒤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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