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언니님에게서 타블렛이 왔다!
내 로망을 이룰 때가 왔구나..그러나 이번엔 잉크가 말썽이다.
분명 닫아놓고 잤는데 깨어나 보니 열려 있고,
어딘가 끈적한 느낌이 드는 그놈은 마구 끊어진다.
펜촉을 물에 적셔서 쓰면 좀 낫긴 하는데 쓰면 쓸수록 펜선이 옅어지는고로
사고가 날 수 있어 지속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다.



그러고 보니 며칠 동안 일기를 안 쓴거냐..일주일 훌쩍 넘어갔네.
한번 안쓰게 되니 홈페이지에 무슨 바리어가 생성된 것처럼 손을 댈 수가 없더군..
일기에 쓸 일이 별로 없었고 그만그만한 나날들이었다고 하기엔
그동안이 너무 거지발싸개 같았고.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엄청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도 조잘거리더니 혀가 말려들어가기라도 했나.



메신저로도, 오프라인으로도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며칠 동안 무병장수를 켜면 인터넷을 하지 않고
애니메이션을 보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그랬더니 아주 편하더라.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홈페이지의 주인이라는 본분이 아니었다면 확 잠수해버렸어도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걸 막기 위해 만들어놓은 곳이 이곳이니까.
자꾸만 금이 간 알껍질 속으로 다시 기어들어가려는 저 목덜미를 붙들어야겠지.
그 뒤를 생각할 겨를 따위가 없다.
한심스럽지만 그것 하나를 뛰어넘는 게 이렇게 힘들다.



흔하고도 닭살스런 얘기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참 아름다운 일이다.
남에게 자기 자신을 아무런 타산 없이 주는 것만으로 기뻐할 수 있는 드문 현상.
좋아하는 마음은 하나가 되고 싶다-는 마음과 동일한 것 같다.
너를 내 것으로 하고 싶다는 것이 아닌, 내가 너의 것이 되고 싶다는 그 말이 맞다.
이기주의의 극단에 서 있는 나는 그것이 너무나 존경스럽게 느껴져서 동경하곤 한다.
나는 그렇게 누군가를 위해 나를 희생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어버리고 싶어지는 때가 있을까.



하지만 그것이 정말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문에 도달하면
가슴은 차가워져 버린다.
나는 그 힌트 몇 개를 잡았을 뿐 한 번도 가슴 가득히 느껴본 일이 없다.
누구나 최후의 순간에는 자기 자신을 우선으로 하니까.
그런 행운은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내 인생에도 그런 감정을 느껴볼 순간이 있을까?
희망을 가져 보려 해도 지금까지 보고 들어온 경험이 쌓은 사고는
'앞으로도 찾을 수 없을 거다. 왜냐면 그런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라고
자신있게 말하면서 비웃는다.
정말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버둥거리고 있다.
지금 손에 쥔 것이 진짜라고 믿고,눈을 감아버릴까.
갖고 있는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먼저 의심해 보기부터 한다는 건
별로 생산적인 태도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아마 의심해 보겠지. 지금까지 그랬듯이 끊임없이.
이게 진짜일까? 내 모든 걸 걸어도 되나? 나중에도 후회하지 않게 될까?
나도 언젠가는 그걸 찾으러 뛰어들 용기를 가질 수 있겠지.
찾을 수 있을지는 더 먼 문제지만..



신이 굽어살펴주셨으면 하는 일들이 많이 있다.
어머니는 교회나 절을 다녀보라고 하시지만 난 종교를 가지고 싶지 않다.
지금의 상태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은 나를 미워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신은 나를 만들어 놓기만 하고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고 잠깐 생각했지만
마치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처럼
어린 딸이 아버지에게 하듯,아버지가 어린 딸에게 하듯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



나도 아마,당신의 딸이지요?
내가 당신을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않던 순간에도,당신은 나의 아버지.
당신은 나를 한순간도 버린 적이 없겠지요.
단지 그 손을 뻗지 않고 지켜보고 있을 뿐.
그렇다면 끝까지 지켜보세요.
또다시 잔뜩 더러워져서 울면서 아장아장 걸어 돌아오더라도
따뜻하게 감싸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두려운 일이 아니지요.
가지고 말 테다,내가 갖고 싶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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