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성적,
공모전 결과,
맘에 안들게 된 머리,
누구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드라마의 결말,
감동적인 음악,
전화 한 통화,
친지의 죽음,
믿던 사람에게 입은 심적/경제적 타격,
자기 자신의 안에 내재한 혐오스러움,
천국과 지옥을 동전의 양면처럼 쉽게도 왔다갔다할 요소는 정말 많군.
감정적이고 기복이 심한게 인생을 얼마나 피곤하게 하나.



바로 옆에 있는데 너와 나의 거리는 왜 이렇게 멀까.
하지만 그 아무 걱정없는 밝음을 나는 동경하는지도.



지금 그런건 나에게 정말 하잘것없는 걱정거리다.
그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생명보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경제보다,
불확실한 꿈과 미래보다도
더 큰 걱정이야?



다른 사람에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런 것보다 현재 내 생활과 내 꿈이 중요하고
와닿지 않는다.



남의 걱정을 좀더 객관적으로 이해해 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어도
가끔 이렇게 가짜 아량은 바닥이 난다.
사람을 힘들때만 다락에서 꺼내쓰는 도구로  취급하지마, 역겹다.
그 도구도 자기 일로만 버거워, 주인을 신경쓸 수 없으니까.
몇번이고 이해하고 감싸주는 인격적인 사람, 나는 못한다.



객관적으로 예상하고, 앞으로를 추측해 보는게
냉정해지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건
역시 예상된 일이면서도 개같지.



근데 울어도 소용없음을 알고 눈물 한방울 안나오는 것도 그렇다.
전혀 그렇지 않은 인간이 머리부터 영악해져서 어쩔 셈일까?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악몽,
악몽이 내 곁을 떠나면 또 다른 악몽이 내 곁으로 다가온다.




1년전 고모께서 돌아가셨다.
몇달 전 막내외삼촌은 돌아가셨다.
큰외삼촌은 살아 계시지만, 이제 다시는 뵐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주, 외할머니도 돌아가셨다.



솔직히 지금까지 일은 어떻게 진척시켜왔고 앞으로 어떻게 될런지 감이 전혀 안 온다.
힘든 일은 거의 나보다 언니나 아버지가 하셨는데도..
그렇게 마치 자각몽을 꾸는 것처럼 현실 앞의 일들을 흘려보내는 걸로 날 지켰던 걸까.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위로하려고 주말에 난 저녁을 샀고, 우리 가족은 즐거운 식사를 했지만-그대로 함께 집으로 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나는 나대로 울고 들어오면서, 오직 막냉이만 혼자 눈을 굴리며 집을 지킨다.



이 일기에 긴긴 사정을 다 쓸 수 있을까-없다.
그러니 지금 내 심정을 누가 알아줄까-나 혼자 끌고 가야지.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입관할 때 외할머니의 모습이 생각나서 돌아버릴거 같애.
왜 마지막으로 수발들러 갔을때, 침대 옆에서 잠들어있는 거 정도밖에 하지 못했을까?
왜 외할머니가 계속 낮게 부르시던 노래를 좀 더 잘 들어 두지 않았을까.
하다못해 그걸 핸드폰에 녹음하려던 엄마를 왜 좀더 적극적으로 못 도와 드렸지?
정말 너무해요, 외할머니 왜 그게 마지막이라고 가르쳐주시지 않았어요..
막냉이보다도 작고 마른 뼈가 앙상한 모습으로,
눈도 제대로 못 감으신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아버지가 계속 눈가를 쓰다듬었지만 눈은 끝내 감기지 않았다.
뉴질랜드로 이민가신 후 못본지 10년도 넘은
둘째 외삼촌이 보고 싶어서 그런다며 이모들은 우셨다.
세 명의 아들들 중 아무도 빈소를 지킬 수 없어,
사위인 아버지가 상주가 되어 앉아있는 빈소는 얼마나 휑했을까. (난 일 때문에 가질 못했다)
내 방에는 외할머니가 담뱃재를 털어 타버린 자국이 지금도 남아있는데,
아무리 울어도 외할머니는 돌아오시지 않는다.
그걸 아는 나이가 되어도 여전히 눈물이 난다.
또 언젠가 내 주변 사람들을 이렇게 보내겠지 생각하면 더더욱 가슴이 찢어진다.
죽음의 무게란 이런 거였어. 정말 이런 거였어.



언젠가 이렇게 될 줄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
왜 마음에 많이많이 담아두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 노력을 했어도 지금 편할 수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다음에 병원에 간다면, 친구가 발가락을 삐었다거나 해서
'아..귀찮아 문병을 가 말어?'하고 고민할 수 있는 그런 일이길.



그리고 정말이지, 내 문제로만 괴로워하고 싶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내 인생에 끼어듬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를
남을 원망해 해결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노력해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 스트레스는 또 얼마나 장난이 아닌지.



하느님, 이 연사 아무리 철딱서니 없더라도 다음생엔 풍족한 집안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사내자식으로 태어나게 하소서.
비록 그렇게 태어남으로서 세상물정 하나도 모르고 앞뒤없는 개망나니가 된다 하더라도
전 제 맘이 편한 쪽을 택하고 싶어지나이다.
그리고 이게 씨잘데기 없는 한낱 바람에 날려 사라질 푸념임도 알아주시옵소서.



이 일기를 끝으로 나 자신에게 신경질내는 건 그만둬야지.
인생은 즐거운 일도 너무 많고 난 살아서 할 일도 많다. 컴도 고쳐야지...
외할머니는 그곳에서 편하실 것이다.
어머니는 외삼촌과 외할머니로 인해 나가야 했던 지출을 줄이실 수 있겠지.
난 일을 좀 더 잘하고 싶고, 내 꿈도 꼭 이룰 것이다.
노력하면 그만큼 보답이 있을 거야..지금까지도 그래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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