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요일이지만 일하고 돌아온 나는 정말이지 놀고 싶었다. 맘먹고 놀기로 작정하고 비디오테이프를 한 편 빌렸다. 언니님이 DVD&VTR 겸용기를 보내준 이후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빌려보면 된다는 생각을 했지만 오늘에서야 그 생각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만화나 영화를 고르는 데 있어서 정말 심사숙고한다. 아무래도 돈을 쓰게 되는 일이기 때문에 지뢰를 밟았을 때의 가슴아픔은 견디기 힘든 지경이거든..(한 편을 빌리기 위해 두시간 반 정도를 비디오대여점에 죽치고 있었던 일도 있다)그래서 내 나름대로는 많이 본 건 없어도 내 취향에 때려맞추는 직감은 꽤 있다고 자부하는데, [폰부스]는 에이스였다. ^_^
[폰부스]는 어디서 시놉시스만 적당히 줏어들었던 영화인데, [마이너리티 리포트]이후 콜린 패럴에게 꽤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카트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가 T3의 존 코너였던 건 아직도 불만이지만, 이 영화에서의 그의 연기력에 감화되어 생각이 좀 바뀌게 될지도)
주인공이 폰부스에 갇힌 채 영화가 시작되고 끝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공중전화]를 매개체로 하여 이곳저곳 전화를 걸어 수를 쓰며 범인에게 대항할 줄로 예상했는데 그 반대였다. 통화는 계속해서 범인과 하면서, 시비걸던 인간이 총맞아죽고 경찰이 에워싸고 방송국이 대치한 상황에서 주인공 혼자 힘으로 벗어나야 하는 상황이었던 거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80분이라고 하는데 거의 못 느꼈다. 영화 초반에서 잘 빠진 짜가 양복 입고 거들먹거리던 주인공이 영화 끝날 때쯤엔 피와 땀과 눈물에 젖어 기진맥진, 엉망진창이 되어있다.. 범인이 격철을 당긴 채 주인공을 위협할 때엔 나도 손에 땀을 쥐었고, 결국 주인공을 향해 총이 발사될 때엔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클라이막스에서 전화부스 밖으로 몸을 내민 채 자신의 죄를 털어놓으며 통곡하는 장면은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인간 내면에 대한 강한 메타포였다. 막냉이는 분명 범인의 정체는 예수님이라며 힘주어 말하던데..-ㅂ- 자꾸 회개라하는 둥 말하는 게 그 증거라나..뭐 이 영화를 끝까지 봐도 막냉이에게 구체적으로 반박할 순 없다. 함 보시라.
다만, 논리적인 결말을 기대한다면 폰부스는 좀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80분 동안 정신없이 브라운관에 눈길을 빼앗긴 채 가슴졸이기엔 완벽한 영화다. 아~헐리우드 부럽다. 이런 영화도 만들고..제작비 굳었겠네. 이정도면 우리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p.s : 근데 극중 팸으로 나오는 여자애, 브릿 여동생 아니야? 어째 저렇게나 닮았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