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도 상당히 고집이 세다.
생각대로 일이 풀려가지 않을 때의 도피욕구나 스트레스도 강하다.
어린아이로 비하자면 자기 머리카락을 물어뜯으면서
으아아! 하고 울어제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동댕이치는 꼬락서니.
그래서 그닥 넉넉하지 못했어도 하고 싶은 것이나 갖고 싶은 것을
내 여건에 비해 꽤나 많이 이루고 살아왔던 것 같다.
지금도 꼭 갖고 싶은 것은 어떻게 해서든,얼마가 걸리든
반드시 손에 넣는 편이다.
(가지기 위한 능력치에 도달할 때쯤 식어버린다는 게 이상하지만)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어른스럽게] 불가항력적인 일에 체념이 빠르지 못한 이유.
무슨 수를 써서든 노력해서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으니까.
단념에 대해 생각할 때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중 3때 졸업앨범 사진을 찍을 때,
나는 너무나도 그 날 컨디션이나 겉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그래서 만원에 사진을 새로 찍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다시 찍고 싶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 나에게 만원은 큰 돈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난 부모님께 용돈을 받지 못한다.
저녁 때 말을 꺼냈지만 한시간도 못 되어 순순히 물러나야만 했다.
부모님이 만원을 주기 싫어서 안 주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었으니까.
등록금조차 내기 힘든 처지에 사진값은 그야말로 호사였다.
그럴 때 물러설 줄 모른다는 건,
부모님의 까진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일
그 이외의 어떤 다른 일일 수가 없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니 이런 경험은 셀 수 없이 많았고
졸업앨범 사진이 나에게 그렇게 크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다.
(다시 찍으나 마나 별 다를 것도 없을 것을)
그래도 굳이 그 일만이 기억에 남는 건,
아마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조르고 싶었던 그 억울함이
졸업앨범이라는 형태로 남는 매체에 새겨져서인 것 같다.
그 나이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난 돈을 스스로 벌기 시작했고,
마음 내키는 일에 1,2만원을 선뜻 꺼낼 수 있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그닥 웃으면서 돌이킬 수는 없는 추억이다.
그 당시의 내가 배춧잎 한 장이 없어서 겪었던 좌절감이라니..
우습기도 하지만 역시 웃음은 안 나온다.
지금도 바로 옆에 그 때의 나처럼
작은 욕심을 단념하는 법을 배워가는 동생이 있어서겠지.
이런 내가 근시일내로 어서 단념해야만 할 일이 있다.
이성적으로는 분명 단념하는 것이 현명하고
객관적으로 쓸데없는 욕심이고 집착일 뿐임을 잘 알 수 있는데도
정작 도마 위에 올리는 최종적인 행위는 하지 못하고 있었다.
친구가 간지럽히는 데에 말려들어가 소리지르며 웃다가
손의 힘이 풀린 순간 갑자기 눈물이 뚝뚝 듣는 그런 마음이다.
오래 생각하고 싶지가 않았다.
어차피 내 것일 수가 없다는 것, 단념해야 한다는 것.
나쁜 일은 빨리 잊는 성격 탓인지도 모른다.
빨리, 깨끗하게 단념하는 법이 생각나지 않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