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현실 속의 광기를 좋아한다. 광기를 광기 그대로 귀기스럽게 표현할 수도, 코믹하게 표현할 수도, 애살 깊게 표현할 수도 있겠지. 그러다 보면 현실에서 아주 멀어져버리기도 하고, 그건 '판타지'라는 이름으로 변모해 색다른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난 만화 [G.T.O]에서 오니즈카가 물을 맞아 망가져 버린 간호사 미미 패키지를 들고 울부짖으며 뛰어가는-바로 다음에 칼을 든 채 괴성을 지르며 뛰어가는 야마다 교감이 크로스된 장면을 참 좋아했다. 광기가 느껴졌거든.
G.T.O이야기를 왜 꺼냈냐면...뭐랄까 느낌이 비슷했다. 둘 다 방탕하게 놀면서 키득키득 웃는다. 하지만 그 당돌함이 기분나쁘지 않다.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무척 가슴아프기도 하다. 그리고 둘 다 약간 삐끗했다.
내 우리나라 영화마케팅에 상당히 불만인 게 하나 있는데.. 우리나라 영화는 유난히도 자극적인 것, 솔직한 것, 적나라한 것에 약하다. 마치 뜨거운 것에 확 덴 듯, 자라 솥뚜껑 보고 놀란 것처럼 계속 거기에 포커스를 집중하고 궁금해하고 배우와 감독을 괴롭힌다. [해피엔드]가 그랬고 [돌이킬 수 없는]이 그랬다. 이래서 생길 수 있는 가장 큰 패악으로, 어설픈 것들마저 좀 적나라하기만 하면 쿨함과 예술과 화제성을 자칭한다는 데 있다...퉤퉤!
특히 이 영화의 마케팅 방식은 뭐가 한참 잘못된 것 같다. '남편말고 애인이 필요해'? 여주인공 호정이는 그런 말 한번도 안 하던데? 카피를 좀 더 잘 쓸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쩝쩝.
[바람난 가족] 개봉당시 웬지 모를 기대가 있었다. 문소리와 김여정 외에는 모두 모르는 배우(그렇다 이때까지만 해도 난 성지루를 몰랐었다)..하지만 메이저 영화. 이거 혹시 내가 원하던 거 아닐까? 문란분방함을 가장한 현실영화 아닐까.. 그럼 조금은 머리아프려나. 이 예상은 반쯤 맞았다. 왜냐면...시간가는 줄 모르고 봤거든.
이 영화는 정말 리얼했다. 마치 실제로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있었던 일을 그대로 옮겨온 것처럼. 생활의 냄새가 가득 묻어난다. 만약 뭔가 화끈한 걸 기대한다면 이 영화는 안 보는 게 좋겠다. 마치 자기가 몰카를 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지도 모르거든.. 하지만 리얼함이 최고의 자극이기도 하다.
다만 극중 영작과 호정의 가정 분위기와 각각의 캐릭터들은 그렇게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겠으나..이건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끌어가기 위해 캐릭터를 '도구'로서 사용한 모범적인 예라고 보여진다. 그래서 '바람난 가족'은 완전한 리얼리즘은 아니다. 리얼한 껍질을 쓰고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맘껏 한, 창작물로서 좋은 형태다. 만약 임상수 감독이 신인이거나 아마추어였다면 평이 높았으리라 본다. 하지만 프로다운 메시지의 결집이나 절제는 약간 떨어진다는 것이 현재의 내 평.
근데 애초 캐스팅대로 김혜수가 주연이었다면 이 영화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식은땀이 흐르는군...;; 시나리오로 해석해본 호정의 캐릭터는 영화의 것과는 약간 다르던데, 영화 쪽이 좀 더 얌전한 소녀 느낌이다. 문소리 자신의 해석이 들어간 걸까..?
p.s 봉태규한테 이런 과거가 있었군..근데 그렇게 다리가 짧을 줄이야.
p.s2 영작과 호정의 아들인 수인의 독특한 캐릭터가 특히 잊혀지질 않는군. '아저씨 나 안 던질 거죠?'하는 순간 휙 던져버리는 신은 정말 가슴이 덜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