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기록』/『內』
혼잣말
yarim。
2004. 10. 5. 15:32

Sex and City 시즌 6에서 엔딩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의 에피소드.
미란다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의 듣다보면 짜증나는 헛소리를 잘 받아넘기고, 급기야 가출해 버린 그녀를 데려와 씻겨주는 장면이 있다.
화장도 안 한 채 "Shit!"을 연발하며 점퍼를 껴입고 뉴욕 거리로 뛰어나가는 그녀 모습에서부터 웬지 심상치 않더니, 상한 피자를 씹어먹으며 여전히 헛소리를 중얼거리는 미란다의 시어머니를 보고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아들 브래디를 키우면서 치장할 여유가 없는 걸 속상해하고, 다른 세 친구들에 뒤지지 않는 멋쟁이인 미란다가-다른 한편으로는 저렇게 변할 수 있다니.
죽어도 맨하탄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던 미란다가 결국 아이를 위해 이사하고, 스티브에게 먼저 시어머니와 함께 살자고 말하는 것을 보며 그녀와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캐리를 좋아하지 않는 건 캐릭터에서 비추어 보건대 절대 그녀는 그럴 수 없을 거야..라고 생각되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심장수술을 한 전 애인을 위해 민망한 옷차림을 하고 밤새 간호하는 건 가능하지만, 알콜중독 떄문에 자다가 갑자기 침대 시트에 피를 토하는 아버지를 매만질 수는 없는 여자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시즌 1~6을 통틀어 가장 성장하지 않은 것 같은 여자다. 끝까지 받고 있는 것에만 민감할 뿐 주어야 할 것에는 무심한 여자였기에..
사랑은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해..
빅과 그녀가 천생연분이라는 암시는 시즌 1부터 꽤 자주 등장하는데.. 남녀로서 그들은 서로를 가장 즐겁고 들뜨게 해줄 최적의 관계지만, 인간으로서..라고 하면 조금 그렇다.
그들은 스미스와 사만다-해리와 샬롯-스티브와 미란다 커플이 모두 한 번씩 거쳐간, 서로 보듬고 감싸는 모습이 한 번도 없었다.
결말을 보고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래서야 빅이 다시 떠나도, 캐리가 다시 화를 내도 이상할 게 없겠어-you're the one이라는 말은 말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왜 눈물을 흘렸냐면..
최근에 돌아가신 내 외할머니께서 치매였다.
몸에 간직한 여러 끔찍한 병 때문에 온 심인성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다지 안락하게 살다 갔다고는 할 수 없는 없는 삶이셨다.
뭐든 겪어봐야 이해하게 된다는 말은 정말 맞는 것 같다.
잔인하고 슬픈 얘기지만.
가끔 치매노인에 대해 말을 함부로 하는 미친것들을 보는데
그런 것들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치매에 걸려
가장 끔찍하게 망가져가는 모습을 꼭 봐야 한다.
닥치면 못해낼 게 없다.
정말 그런것도 같다.
같잖게 몹시 깔끔떠는 데가 있고 귀찮은 것 질색하고 이기적인 나.
누군가의 병구완을 떠맡았을 때 겉으로야 OK했지만 속으로 '너무한다! 그것도 하루 꼬박 내내라니!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병원에서 나 혼자서?'라고 생각했다.
막상 뵈니 대소변조차 화장실까지 갈 수 없어서 비싼 개인용 병실을 따로 쓰고..하루에 옷을 몇번 갈아입혀야 하는지 헤아릴 수도 없고 성인 남자인데도 여자인데다 어릴 때부터 알던 내가 기저귀를 갈아주어야 한다는 상황.
'너무 이기적이란 거 알지만 못하겠다고 버려두고 중도에 도망나올지도 몰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
차마 글로 쓰기 뭐한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는데..
더러워진 옷을 빨고 "또요?"라는 노골적인 소릴 들어가면서 몇번이고 간호사 콜을 하고 몇 번씩 같은 복도를 뛰어다니고..
나밖에 할 사람이 없다는 절박감이 그냥, 하게 만들었다.
오늘 청소하면서 문득 그때 간병하던 생각이 났는데 가슴 한구석이 아릿아릿해 왔다.
SACT를 보면서 흘렸던 눈물이나 이 통증이, 과연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한 감정인가?
아닌 것 같다.
이기적인 나의 자기감상이고 면죄부일 뿐이라는 걸...
이제 나이를 꽤 먹고 말았는지 자기기만도 할 수 없다.
도망치기 전에 이미 머리가 정답을 찾아내 눈앞에 들이대니까.
뇌리 어딘가에 존재하는 한없이 엄격하고, 도덕적이고, 결벽적인 자아으로부터 도망갈 수 없다는 건 두렵지만 언젠가 꼭 받아들여야 할 일이겠지.
세상에 안고 싶은 아름다운 여자들은 많은데 어머니처럼 안아줄 여자들은 없는 것 같다고 누군가가 그랬었다.
들을 당시엔 앗 모성으로의 회귀본능? 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이 말이 좀 다르게 들린다.
내 스스로가-
차에 치인 개를 안아 옮겨주기 위해 아끼는 옷을 더럽힐 수 있는 여자이길.
슬픈 일이 있을 때 다만 울기만 하지 않는 여자가 되길.
강해지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더욱 그렇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