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기록』/『內』

아무도 구제하지 않는

yarim。 2004. 11. 25. 03:20
두 눈 달린 사람의 마을에선
외눈박이는 병신이지.
하지만 그 마을 사람들은 모두 착해.
그를 놀리지도 멸시하지도 괴롭히지도 않지.
그렇지만 또한 아무도 외눈박이의 눈을 바라보지 않고
손을 잡지 않지, 그의 이야기를 오래 들어주지도 않아.
괴로움이 지나가고 이제 모두가 즐거울 시간인데
그에겐 함께 술잔을 나누고 춤을 출 친구가 없어.
가엾은 외눈박이, 그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하지만 사람들에게도 잘못은 없지.
모두가 착한 사람들인걸.
하지만 착한 사람들의 그린 듯한 행복에
외눈박이는 한 점 티와 같아서 그의 존재는 슬프고
결국 이 모든 잘못은 그만을 외눈박이로 만들어버린
신에게나 돌려야 하나봐.
왜 신은 그를 외눈박이로 만들었나.
아무도 그걸 가르쳐주지 않고
그래서 그는 앞으로도 외로울 거야...


서로가 먼저 마음을 열고 감싸주어 행복해졌다는
우화의 결말은 진짜 진흙탕에 발을 묻은 사람들에겐
불가능까지는 아니더라도 너무나 힘든 이야기.
사실 그것보다 더 쉬운 게 미리 싹을 잘라버리는 거야.
어느 누가 그런 행동을 겁쟁이라고 욕할 수 있을까.
그게 바로 우리의 한계고 나약함이며, 몇백년을 반복해온 일인데.
어째서 물러설 수 없게 되었을까.
상대를 밀어 떨어뜨려야만 내가 살 수 있게 되었을까.


삶의 힘겨움과 정신적 문제에 남김없이 침식된 사람-
남들에게 보일 여유와 자존심마저 상실하고 만 사람은
어쩔 수 없다, 늪에 빠진 두꺼비처럼 허우적거리는 수밖엔.
간간히 입을 열 수 있다 해도 "꽤액!!"하는 비명 외에 무엇이 나올까.
남는 건 살고 싶다는 생각 뿐 나머지는 차선이야.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그의 주변 사람들이 그를 이해할 수 있어도
그의 고난을 함께 받아들이고 감쌀 수 있는지는 별문제라는 거다.
사람은 아주 쉽게 희생정신을 발휘하다가도
데드라인이 자신이라는 고유영역에 다가오는 순간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돌변한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동물로서의 본능은 변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원하는 건 "긍정적 에너지"
자신에게 좋은 영향을 줄 어떤 것이다.
그것이 힘이나 여유, 자신감이라고 해도 그렇지.
어느 누가 진흙탕 속을 허우적거리며 시끄러운 비명을 질러대는
저 사람을 건져주려 할까.
잠깐 귀를 막고 잰걸음으로 가버리면 그뿐인걸.
남의 일이니까.
'저런! 숨막히겠구나 힘내'라고 격려해준 뒤 지켜만 본대도
그것으로 도리는 다한 것이다.
그건 그만의 운명이고 누구도 함께 짊어질 의무는 없으니까.
그러니까...그의 외로움은 우리의 잘못이 아냐.
우린 질책조차 듣지 못하고 그저 헐떡일 뿐인
또다른 의미로 약한 존재인걸.


그래서 나는 지금 내 앞으로의 처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처지인데도 불구,
그에 앞서 진탕 언저리로 살금살금 다가가
살짝 그 두꺼비에게 소근거리는 것이다.
그동안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
우리 이제 서로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각자의 길을 가요.
우리들 완벽하진 않았지만 좋은 기억만 가지고 갈께요.
부디 당신만의 길로 가 행복해지세요.




그리고 또 진흙탕에 빠지게 되더라도
이젠 내 이름을 부르지 마세요-
안녕,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두꺼비.